왜 톰포드인가, 명품 아이웨어 시장의 상위권을 지켜온 ‘T’의 문법

2026-10-15

톰포드(TOM FORD)에게 안경은 액세서리가 아니다. 브랜드의 출발점이다. 톰포드 브랜드는 2005년에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첫 장을 연 것은 수트(정장)도, 향수도 아닌 선글라스였다. 20년이 흐른 지금도 관자놀이 옆에 박힌 작은 금속 ‘T’는 이 브랜드를 한눈에 알아보는 표식이다. 디자이너는 은퇴했고, 회사의 주인도 바뀌었다. 그런데 안경만큼은 같은 파트너, 같은 문법으로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이 글을 다 읽었을 때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디자이너 톰 포드, 그리고 브랜드의 탄생

<출처: Getty Images>

톰 포드는 무너져 가던 구찌(Gucci)를 되살린 전설적인 디자이너다. 그는 구찌에서 14년을 일했다. 이 기간에 구찌 그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브랜드의 디자인 방향을 총괄하는 책임자)와 경영위원회 부회장을 지냈다. 업계는 그가 침체에 빠진 구찌를 다시 일으켰다고 평가한다. 2005년 4월, 그는 자기 이름을 건 브랜드를 발표했다. 파트너는 구찌 그룹 CEO 출신 도메니코 데 솔레였다. 데 솔레는 회장을 맡았다. 같은 해 톰 포드는 두 개의 중요한 계약을 맺는다. 하나는 이탈리아 안경 회사 마르콜린(Marcolin)과의 아이웨어 계약이다. 다른 하나는 에스티로더(Estée Lauder)와 손잡고 만든 뷰티(화장품) 라인이다. 순서가 흥미롭다. 의류보다 안경이 먼저였다. 아이웨어 컬렉션은 2005년 10월 첫선을 보였다. 뉴욕 첫 매장과 남성복·여성복 컬렉션은 그 뒤에 나왔다.

연도사건 
1990년구찌 여성 기성복 디자인 팀으로 합류
(이후 1994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임명)
2004년도메니코 데 솔레와 함께 구찌를 떠남
2005년 4월톰포드 브랜드 설립 발표
2005년 10월마르콜린과 만든 첫 아이웨어 컬렉션 출시
2006년남성복(정장 및 기성복)으로 처음 출시
2009년첫 장편 영화 ‘싱글 맨(A Single Man)’ 연출
2023년브랜드 매각 후 크리에이티브 수장에서 은퇴

20년 파트너, 마르콜린,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배경

<출처 : www.marcolin.com>

톰포드 안경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회사가 만든다. 이탈리아의 마르콜린(Marcolin)이다. 마르콜린은 1961년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에서 시작했다. 본사는 롱가로네에 있다. 이 지역은 이탈리아 안경 제조의 중심지로 꼽힌다. 2022년 말 기준 직원은 약 2,000명이다. 두 회사의 관계는 20년 동안 끊긴 적이 없다. 계약은 연장에 연장을 거듭했다. 그리고 2023년, 결정적인 장면이 나온다. 마르콜린이 톰포드 아이웨어 라이선스(상표 사용 권리)를 ‘영구’ 계약으로 바꾼 것이다.

시기마르콜린–톰포드 라이선스(상표 사용 권리) 
2005년첫 계약, 아이웨어 컬렉션 출시
2010년2015년 12월 31일까지 조기 연장
이후2022년 12월까지 재연장
2023년 4월 28일에스티로더와 영구 라이선스 체결, 선지급 2억 5,000만 달러

숫자가 말해준다. 마르콜린은 계약 대가로 2억 5,000만 달러(약 3,000억 원대)를 한 번에 먼저 냈다. 이 돈을 마련하려고 보유 현금에 더해 주주들이 7,500만 유로를 추가로 투자했다. 안경 한 라인에 이 정도 금액을 건다는 것. 톰포드 아이웨어가 시장에서 어떤 위치인지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지표다. 톰 포드 본인도 마르콜린을 높이 샀다. 2010년 계약을 연장하며 그는 마르콜린을 “뛰어난 제조사이자 파트너”라고 불렀다.

‘T’의 디자인 문법, 한눈에 알아보는 이유

<TF1387-K 52F, www.tomfordfashion.com>

톰포드 안경은 로고를 크게 쓰지 않는다. 그런데도 멀리서 알아본다. 비결은 경첩 옆 ‘T’다. 모든 톰포드 안경에는 경첩(안경다리를 접어 연결하는 관절 부분) 쪽에 작은 금속 ‘T’가 붙어 있다. 안경다리에는 ‘TOM FORD’가 새겨진다. 이 두 가지가 정품을 알아보는 표식이 된다. 디자인의 바탕은 빈티지 글래머(과거 할리우드의 화려하고 매혹적인 스타일)다. 1950~70년대 할리우드 느낌의 굵은 실루엣에 현대적인 선을 더한다. 소재는 이탈리아산 아세테이트(색과 무늬를 선명하게 내기 좋은 고급 뿔테 플라스틱 소재)와 가벼운 금속을 주로 쓴다.

최근의 변화, ICON 컬렉션
‘T’는 계속 진화 중이다. 마르콜린이 내놓은 ICON 컬렉션에서 남성 모델의 T 로고는 실버(은색)로도 나온다. 투명한 안경다리와 맞물려 내부 구조가 보이도록 설계했다. 여성 모델에는 주얼리(보석)에서 따온 입체 바게트 컷(직사각형 모양으로 길게 깎은 보석 커팅 방식) T가 들어갔다. ICON 안경테 일부는 자석 클립온(기존 안경테 위에 덧붙이는 선글라스 렌즈 덮개)을 달 수 있다. 끼우면 바로 선글라스가 된다.

디자인 요소특징 
금속 ‘T’경첩 쪽에 부착, 브랜드의 서명
템플(안경다리) 각인안경다리에 ‘TOM FORD’ 표기
소재이탈리아산 아세테이트, 경량 금속
무드(분위기)빈티지 글래머(고전적인 화려함) + 현대적 라인
ICON 컬렉션실버 T, 투명 템플, 바게트 컷 T, 자석 클립온

007이 선택한 안경

<출처: Sony Pictures>
<TF108 JAMES BOND 007 Sunglasses, piccadillyopticians.co.uk>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세 편의 영화에서 톰포드 선글라스를 썼다. 시작은 2008년 ‘007 퀀텀 오브 솔러스’다. 톰 포드는 의상 디자이너 루이즈 프로글리와 함께 본드의 옷을 맡았다. 맞춤 수트, 셔츠, 니트, 넥타이, 그리고 안경까지. 이때 본드가 쓴 모델이 FT0108 ‘제임스 본드’다. 반무광 로듐(단단하고 부식에 강한 은빛 귀금속 도금) 프레임에 스모크 블루(회색빛이 감도는 푸른색) 렌즈를 끼웠다. 이 모델은 007 로고를 새긴 전용 케이스에 담겨 나왔다.

2012년 ‘스카이폴’에서 본드는 에비에이터(비행기 조종사들이 주로 쓰던 눈물방울 모양의 스타일) 선글라스 Marko FT0144를 썼다. 상하이 공항 장면에 등장한다. 2015년 ‘스펙터’에서는 두 개가 나왔다. 로마 장례식 장면의 Snowdon FT0237, 그리고 모로코 장면의 Henry FT0248이다.

영화(연도)모델장면·특징 
퀀텀 오브 솔러스 (2008)FT0108 ‘James Bond’로듐 프레임, 스모크 블루 렌즈, 007 전용 케이스
스카이폴 (2012)Marko FT0144에비에이터(조종사) 스타일, 상하이 공항 장면
스펙터 (2015)Snowdon FT0237로마 장례식 장면
스펙터 (2015)Henry FT0248모로코 장면, 예고편·주제가 뮤직비디오

본드는 남성 스타일의 교과서 같은 존재다. 그런 캐릭터가 연달아 같은 브랜드를 썼다. 톰포드 선글라스가 ‘남자의 선글라스’라는 이미지를 굳힌 결정적 장면이다.

주인이 바뀌어도 안경은 남았다, 에스티로더 시대

톰포드는 2022년 에스티로더에 28억 달러에 팔렸다. 그래도 안경은 그대로 마르콜린이 만든다. 2022년 11월, 글로벌 화장품 기업 에스티로더가 톰포드 인수를 발표했다. 회사 전체 가치는 28억 달러(약 3조 7천억 원)로 평가됐다. 프랑스 명품 그룹 케링(Kering)도 인수전에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최종 승자는 에스티로더였다.

인수 후 구조는 이렇게 나뉘었다. 패션(의류) 부문은 이탈리아의 명품 남성복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안경은 마르콜린이 장기 라이선스로 맡는다. 톰 포드는 2023년 말까지 크리에이티브를 이끈 뒤 경영 및 디자인 일선에서 물러났다. 후임 피터 호킹스는 1년도 안 돼 2024년 7월 자리를 떠났다. 그 뒤를 하이더 아커만이 이었다. 콜롬비아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로, 관능적인 테일러링(신체 곡선에 맞게 옷을 재단하는 기법)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2025년 3월 파리 패션위크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였다.

한국 시장을 위한 톰포드

톰포드는 한국 시장만을 위한 안경 모델을 따로 만든다. 마르콜린은 ICON 컬렉션에 한국 시장 전용 모델을 넣었다. 특징은 두 가지다. 각을 살린 기하학적인 형태, 그리고 옆에서 봤을 때 역동적인 라인이다. 글로벌 브랜드가 특정 국가의 취향에 맞춘 모델을 따로 낸다는 것. 그만큼 한국이 아시아 패션 트렌드를 이끄는 중요한 시장이라는 뜻이다.

국내 소비자에게 이 점은 실용적인 의미도 크다. 서양인 얼굴 골격에 맞춘 안경은 콧대가 닿는 코받침이 낮거나 양옆 폭이 넓어 자꾸 흘러내리기 쉽다. 한국 전용 모델은 이러한 아시안 핏(Asian Fit)을 고려하여 착용감을 크게 개선했다. 그럼에도 톰포드를 고를 때는 안경원(안경점)을 직접 방문해 내 얼굴에 맞는지 착용감과 피팅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사이드 노트, 톰포드 아이웨어에 얽힌 흥미진진한 뒷이야기

<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톰 포드는 선글라스에 유별난 집착을 보인다. 그는 과거 남성들을 위한 15가지 필수 스타일 수칙 중 하나로 ‘자신에게 완벽하게 어울리는 선글라스 한 개를 반드시 가질 것’을 꼽았다. 패션계 호사가들 사이에서 도는 가십 중 하나는 톰 포드가 선글라스를 “얼굴의 갑옷”처럼 여긴다는 점이다. 그는 공식 석상은 물론이고 종종 실내나 어두운 파티장에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일설에 따르면 수면 부족으로 인한 피곤함이나 눈 밑의 주름을 가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심지어 한 인터뷰에서는 농담조로 “샤워할 때조차 선글라스를 끼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로 아이웨어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대중에게 완벽하고 세련된 페르소나를 유지하려는 디자이너의 이러한 강박적인 완벽주의가, 톰포드 안경을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닌 착용자의 단점을 마법처럼 가려주는 아이템으로 성장시킨 숨은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할리우드 스타들이 민낯으로 파파라치 앞에 설 때 가장 먼저 톰 포드 선글라스를 찾는다는 소문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 진심은 ‘프라이빗 컬렉션’에서도 여실히 볼 수 있다. 아이웨어 11주년을 기념해 만든 11개 모델은 진짜 천연 버펄로 뿔과 최고급 일본산 티타늄으로 만들었다. 톰 포드는 이 안경들이 자신이 실제로 쓰는 안경이며, 일부는 원래 자기만을 위해 디자인했다고 밝혔다. 그중 TOM N.5는 그가 연출한 영화 ‘싱글 맨’에서 배우 콜린 퍼스가 써서 유명해진 모델이기도 하다.

프레임이 스타일이라면, 렌즈는 시야다

명품 안경테를 골랐다면, 그 안에 들어갈 렌즈도 그에 걸맞은 수준이어야 한다. 톰포드는 이미 렌즈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마르콜린은 ‘Blue Block(블루 블록)’ 컬렉션을 내놓으며 톰포드를 ‘도수 없는 보안경 용도의 기성 안경’을 선보인 첫 명품 브랜드로 소개했다. 도수 없는 투명 렌즈에 스마트폰이나 모니터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청색광)를 일부 줄이는 기능과 반사 방지·긁힘 방지 코팅을 더했다. 목표는 디지털 기기를 오래 볼 때 눈의 피로감을 줄여주는 시각적 편안함이다.

하지만 시력 보정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안경테는 브랜드 매장이나 쇼핑몰에서 고를 수 있지만, 도수 렌즈는 반드시 안경원(안경점)을 방문하여 안경사의 정확한 시력 검사와 상담을 통해 내 눈에 맞게 조제 및 가공되어야 한다. 같은 톰포드 안경이라도 어떤 브랜드의 어떤 렌즈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시야의 선명함, 내구성, 일상에서의 관리 편의성이 크게 달라진다.

골드 ‘T’에 어울리는 렌즈, ZEISS 듀라비전 골드 UV
톰포드의 고급스러운 금빛 ‘T’ 장식과 결이 잘 맞는 렌즈 코팅이 있다. ZEISS 듀라비전 골드 UV(DuraVision Gold UV)다. 렌즈 표면에 은은하고 고급스러운 금빛 반사광이 감돈다. ZEISS는 이를 자사 코팅 기술 중에서도 가장 프리미엄 라인으로 소개한다.

항목ZEISS 듀라비전 골드 UV 주요 특성 
외관프레임과 어우러지는 은은한 골드 반사광
유지 관리클린가드(CleanGuard) 기술 적용으로 자사 기존 코팅 대비 이물질 제거 및 세척이 용이함 (미국 자사 테스트 기준)
내구성일상생활 스크래치에 강한 뛰어난 긁힘 방지 성능
선명도주야간 렌즈 선명도 개선을 돕고, 렌즈 황변(시간이 지나며 누렇게 변하는 현상)을 줄임
기타눈의 피로를 유발할 수 있는 블루라이트(청색광) 반사 감소

프레임이 외부로 보여지는 나의 스타일을 대변한다면, 렌즈는 내가 하루 종일 바라보는 세상의 질을 결정한다. 명품 안경의 진정한 완성은 결국 좋은 렌즈에서 끝난다.

마무리, 20년 동안 바뀌지 않은 것들

<출처: 베니스국제영화제>

톰포드 아이웨어가 오랜기간 상위권을 지켜온 이유는 ‘일관성’이다. 디자이너가 떠났다. 회사의 주인도 바뀌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2년 사이 두 번 교체됐다. 그런데 안경은 흔들리지 않았다. 같은 파트너가, 같은 이탈리아 공방에서, 같은 ‘T’ 마크를 달고 묵묵히 만든다. 가벼운 유행을 좇기보다 자신만의 확고한 디자인 문법을 지켜낸 브랜드. 톰포드 안경을 쓴다는 것은 그 20년의 뚝심 있는 문법을 내 얼굴 위에 올리는 일이다.

<참고 자료>
Marcolin Financial Disclosure (2023.04.28),  marcolin.com
Marcolin PR, TOM FORD ICON Collection, pr.marcolin.com
Marcolin, TOM FORD Eyewear Private Collection 2022 (PDF)
WWD / Yahoo News, Marcolin Reports Strong 2022 Sales
mivision, Tom Ford Eyewear Signs with Marcolin Until 2015 (2010)
Moodie Davitt Report, Marcolin celebrates Tom Ford licence renewal
Retail TouchPoints / FashionNetwork / Inside Retail, Estée Lauder 인수 보도 (2022.11)
Paul, Weiss, ELC acquires TOM FORD
Style Rave / T2 Online / NSS Magazine, Haider Ackermann 선임 보도 (2024)
20/20 Magazine, Quantum of Solace 및 Blue 보도
James Bond Lifestyle (팬 사이트),  본드 모델·경매·색상 정보
AnOther Magazine, Five Times Sunglasses Ruled the Tom Ford Runway
Man’s World India / Images RetailME, Private Collection 출시 기사
Roger Pope Opticians, About Tom Ford Eyewear
All About Vision, Everything you need to know about Tom Ford glasses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