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하나에 300만 원, 그런데도 못 산다
크롬하츠 안경은 지금 하이엔드 아이웨어 시장에서 가장 독보적인 이름 중 하나이다. 크롬하츠는 돈이 있어도 원하는 모델을 사기 어려운 안경으로 유명하다. 국내 리셀 플랫폼 KREAM에서 인기 모델은 200만 원에서 300만원대에 거래된다. 덕버터 크리스탈 골드 플레이트 모델은 약 330만 원에 올라와 있을 정도다. 매장 상황은 더하다. 인기 제품은 재고가 들어오는 날 바로 소진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델별로 입고 시기가 따로 있는데, 그 주기가 몇 년씩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어렵게 물건이 들어와도 VIC(Very Important Customer, 최상위 고객)들이 먼저 가져간다. 그래서 크롬하츠 마니아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 “매장에 갈 때는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아예 하지 말 것.” 심지어 마니아들의 집단지성으로 만든 통계까지 있다. 나라별 매장 재고량이 대체로 미국, 프랑스, 일본, 한국 순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크롬하츠를 사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미국 LA 말리부 매장에서는 주문제작도 가능하지만, 최근 인기가 치솟으면서 제작 기간이 3개월에서 6개월까지 걸린다. 안경 하나가 어떻게 이런 대접을 받게 되었을까. 이 글에서 그 이유를 하나씩 파헤쳐 본다.
LA의 차고에서 시작된 브랜드, 크롬하츠
크롬하츠는 198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작은 차고에서 태어났다. 창업자는 리처드 스타크(Richard Stark)다. 그는 가죽 사업을 하던 존 바우만, 은세공 장인(은을 다루는 기술자) 레너드 캄호트와 함께 브랜드를 시작했다. 계기는 소박했다. 바이크를 타고 영업을 다니던 리처드 스타크가 마음에 드는 가죽 재킷을 찾지 못하자, 직접 만들기로 한 것이다. 가죽 재킷에 은 장식을 더한 것이 크롬하츠의 시작이었다.
브랜드 이름과 초기 성공에는 영화 같은 일화가 얽혀 있다. 설립 초창기, 한 여자 배우가 ‘크롬하츠’라는 제목으로 개봉 예정이던 영화의 의상 제작을 의뢰했다. 세 사람은 이 영화 제목에서 브랜드 이름을 따왔다. 그런데 진짜 반전은 그다음이다. 그 배우의 남자친구가 전설의 펑크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기타리스트 스티브 존스였다. 그는 영화 의상을 보고 한눈에 반해 크롬하츠에 주문제작을 맡겼다. 섹스 피스톨즈가 크롬하츠를 입고 다니자 롤링 스톤즈, 건즈 앤 로지스 같은 밴드들이 뒤를 이었다. 광고 한 번 없이, 록스타들의 입소문만으로 브랜드가 폭발한 것이다.
1992년에는 CFDA(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 액세서리 부문 상을 수상하며 실력도 인정받았다. 1996년 맨해튼에 첫 부티크를 열었고, 1999년에는 도쿄에 첫 해외 매장을 냈다. 지금은 리처드 스타크와 아내 로리 린 스타크가 브랜드를 이끌고, 장녀 제시 조 스타크가 헤드 디자이너를 맡은 가족 경영 체제다. 2018년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매티 보이’를 발탁했는데, 그는 빈티지 워크웨어에 크롬하츠 십자가 패치를 붙이는 작업으로 완판 행진을 이어가며 올드했던 브랜드 이미지를 180도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크롬하츠의 철학은 지금도 독특하다. 광고를 하지 않고, 할인도 하지 않는다. 아울렛에도 없고 직원 할인조차 없다. 이런 고집이 오히려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렸다.
크롬하츠 안경이 특별한 이유, 디테일의 3요소
크롬하츠 안경의 매력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실버 장식, 소재와 만듦새, 그리고 아시안 핏이다.
첫째, 실버 장식이다. 크롬하츠의 상징인 고딕 십자가, 플레어(백합 문양), 대거(단검 문양)가 안경테 곳곳에 새겨져 있다. 고딕 십자가는 브랜드가 30년 넘게 제작해 온 시그니처 문양으로, 서브컬처 럭셔리의 아이콘이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은이 평범한 은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적인 스털링 실버가 순은과 동을 합금하는 것과 달리, 크롬하츠는 크롬을 합금한 925 실버를 사용해 왔다. 변색에 강하고 내구성이 좋다. 안경테 위의 십자가가 세월이 지나도 광택을 유지하는 이유다. 대표 모델 지티아니의 경우 BS플레어 문양의 실버 디테일과 말발굽 레터링이 안경 다리에 견고하게 박혀 있다. 주얼리에 쓰이는 은세공 기술이 안경테에 그대로 들어간 셈이니, 안경이 아니라 ‘쓰는 주얼리’라고 불릴 만하다.
둘째, 소재와 만듦새다. 크롬하츠가 소재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이 브랜드는 좋은 소재가 확보되기 전까지는 아예 제작에 들어가지 않는다. 인기가 치솟아 물건이 없어서 못 파는 지금도 이 원칙을 지킨다. 모든 제품은 할리우드 공장에서 만들어지는데, 이 공장은 현재 세 블록에 걸친 거대한 타운으로 확장되었다. 디테일에 대한 집착은 상상 이상이다. 크롬하츠 부티크에 가면 내부 가구와 인테리어 장식은 물론, 문의 경첩(문을 여닫는 금속 부품)마저 크롬하츠 디자인이다. 창업자 리처드 스타크는 흑단(고급 가구에 쓰는 검은 나무)을 직접 조각하는 목공소를 운영하고, 프랑스 크리스털 명가 바카라와 10년 넘게 협업하며, 도자기 기업 리모주, 레이스 명가 칼레와도 오랜 협업을 이어왔다. 심지어 그가 가장 아끼는 소장품 중 하나는 흑단 손잡이에 은장식이 달린 ‘뚫어뻥’이다. 스테이플러, 쥐덫, 꽃병 같은 일상용품조차 크롬하츠의 손을 거치면 예술품이 된다. 변기 뚫는 도구조차 이렇게 만드는 브랜드가, 얼굴에 쓰는 안경을 대충 만들 리 없다.
셋째, 아시안 핏이다. 모델명 뒤에 붙는 ‘-A’는 동양인 얼굴형에 맞게 설계된 아시안 핏을 뜻한다. 예를 들어 뿔테 라인의 대표 모델 ‘지티아니-A’는 동양인에게 맞게 출시된 버전이다. 코가 낮고 광대가 있는 얼굴에도 안정적으로 맞도록 만들어졌다. 하이엔드 브랜드가 아시아 소비자의 골격까지 계산해 별도 라인을 운영하는 것이다. 대표 인기 모델을 표로 정리했다. 리셀 가격은 국내 거래 플랫폼 KREAM 기준이며,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 모델명 | 특징 | 참고 가격대(리셀 기준) |
|---|---|---|
| 지티아니-A (Gittin Any-A) | 뿔테 라인의 대표 모델. BS플레어 실버 디테일과 말발굽 레터링. 아시안 핏 | 약 190만 원~ |
| 덕버터 (Duckbutter) | 크리스탈 투명테와 골드 플레이트 조합으로 인기 | 약 330만 원 |
| 부바-A (Bubba-A) | 국내 유튜브 리뷰에서 자주 언급되는 인기 뿔테 모델 | 모델별 상이 |
| 버티컬 스마일 2 (Vertical Smile 2) | 블랙 프레임에 샤이니 실버 장식 | 약 300만 원 |
| 콕스어커 (Coxucker) | 모범생 느낌의 검은 뿔테에 템플(안경 다리) 실버 장식이 포인트 | 모델별 상이 |
셀럽들이 선택한 안경, 그리고 지드래곤
크롬하츠 인기의 핵심은 셀럽들이 협찬 없이 스스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팬층의 폭도 놀랍다. 샤넬의 수장이었던 칼 라거펠트, 꼼데가르송의 레이 가와쿠보 같은 패션계의 거장들도 크롬하츠의 팬이었다. 특히 레이 가와쿠보는 1990년대 초반 크롬하츠에 직접 소량 주문을 넣었고, 매장 전시가 시작되자마자 전부 매진되었다. 이것이 크롬하츠와 아시아 시장 인연의 시작이었다.
한국에서 이 인연을 폭발시킨 인물이 지드래곤이다. 크롬하츠는 원래 협찬을 하지 않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그런데 지드래곤은 협찬이 아니라 자기 돈으로 크롬하츠를 사서 착용한 마니아였다. 그가 방송에서 크롬하츠를 아낀다고 밝히고 벨트와 액세서리를 상시 착용하자 시장이 반응했다. 그가 착용한 실팔찌 ‘KZ 브레이슬릿’은 한국 매장에서 재고가 남지 않을 정도로 팔려나갔다. 지드래곤 한 명으로 인해 크롬하츠의 아시아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그러자 협찬 없기로 유명한 이 브랜드가 예외적인 대접으로 화답하기 시작했다. 빅뱅이 월드 투어로 미국을 찾았을 때, 크롬하츠는 뉴욕 본점 문을 닫고 멤버들이 단독으로 쇼핑할 수 있게 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신발을 제작해 지드래곤에게 선물했고, 빅뱅 콘서트에는 화환과 자체 제작한 보드를 보냈다는 이야기도 팬들 사이에 회자된다. 광고 모델 계약서 한 장 없이, 마니아의 진심과 브랜드의 화답이 오간 셈이다. 창업자 리처드 스타크도 국내 매체 인터뷰에서 이 현상을 언급했다. 협찬이나 광고를 한 것도 아닌데 한국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스스로 선택해 자기만의 스타일로 선보였다는 것, 그는 이를 “선택받은 것”이라며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드래곤이 열어젖힌 문으로 지금은 MZ세대 스타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블랙핑크 제니와 지수, 아이브 안유진, 에스파 지젤, 뉴진스 민지 등이 크롬하츠 아이템을 착용하며 ‘바이크 타는 마초 아저씨들의 브랜드’라는 옛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아이웨어도 예외가 아니다. 레드벨벳 슬기는 템플(안경 다리)에 실버 장식이 박힌 검은 뿔테 ‘콕스어커’ 안경을 블랙 원피스에 매치해 클래식하면서 시크한 무드를 연출했다. 에스파 멤버는 ‘딥2’ 안경을 모던한 수트에 조합해 지적인 매력을 더했다. 모범생 안경 같은 얌전한 프레임에 크롬하츠 특유의 실버 디테일이 포인트로 박히는 조합, 이것이 최근 아이돌들의 크롬하츠 안경 공식이다.
마니아들의 문화도 독특하다. 크롬하츠 마니아들은 서로를 한눈에 알아본다. 십자가, 대거, 플레어 같은 시그니처 문양 덕분이다. 길에서 같은 문양의 안경이나 반지를 발견하는 순간, 말하지 않아도 ‘같은 취향의 사람’이라는 신호가 오간다. 로고를 크게 박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아는, 일종의 암호 같은 디자인이다. 이 암호는 자신을 과시하는 수단이자 브랜드에 대한 애정 표현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2008년 밴드 노 다웃의 보컬 그웬 스테파니는 생후 2개월 된 아들에게 4,000달러(약 600만 원)짜리 크롬하츠 숟가락을 선물해 화제가 되었다. 숟가락까지 갖고 싶게 만드는 브랜드. 크롬하츠 안경은 시력 교정 도구를 넘어 착용자의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다.
크롬하츠 안경, 어디서 어떻게 사야 할까
크롬하츠 아이웨어는 온라인에서 정식으로 살 수 없다. 2014년 크롬하츠 아이웨어 공식 수입사 (주)나스월드의 정책에 따라 인터넷 판매가 전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정품 구매는 공식 취급 오프라인 안경원에서만 가능하다. 참고로 의류와 주얼리 등 패션 라인은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수입을 담당해, 아이웨어와 유통 경로가 다르다. 번거롭더라도 직접 방문해야 하는 구조다.
주의할 점이 있다. 크롬하츠는 가품(가짜 제품)이 매우 많은 브랜드다. 워낙 가품이 많아 초보자는 중고 거래로 구매하기가 쉽지 않다는 평가까지 있다. 온라인에서 크롬하츠 안경이 수십만 원대에 판매되고 있다면 정품 여부를 반드시 의심해야 한다. 정품 인기 모델의 시세와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중고나 리셀로 구매할 경우에는 정품 보증이 되는 전문 세컨핸드샵(정품 중고 전문 매장)을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국내외 크롬하츠 마니아들이 이용하는 유명 세컨핸드샵들이 있고, 정품은 보장되지만 제품 상태와 높은 리셀 가격은 감수해야 한다.
오프라인 구매에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크롬하츠 안경은 은 장식 부위 때문에 일반 안경보다 피팅(얼굴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 훨씬 까다롭다. 이유는 소재에 있다. 은은 금속 중에서도 무른 성질을 띤다. 크롬을 첨가한 925 실버라 해도, 안경의 주 소재인 티타늄이나 모넬(안경테용 합금)에 비하면 약할 수밖에 없다. 은 장식 때문에 힘을 가할 수 있는 지점도 좁아진다. 전용 공구와 노하우 없이 일반 안경처럼 다루면 세밀한 실버 세공이 뭉개지거나 코팅이 손상될 수 있다. 수백만 원짜리 안경의 피팅을 아무 곳에나 맡길 수 없는 이유다. 크롬하츠 취급 전문 안경원에서 구매하면 이런 전문 피팅 서비스까지 함께 받을 수 있다.
프리미엄 프레임에는 프리미엄 렌즈를
수백만 원짜리 프레임에 어떤 렌즈를 끼우는지가 안경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크롬하츠 안경은 장인의 세공이 들어간 작품이다. 그런데 렌즈가 아쉬우면 어떨까. 비유하자면 슈퍼카에 저가 타이어를 끼우는 것과 같다. 프레임의 가치가 온전히 살아나지 않는다. ZEISS 렌즈는 프리미엄 프레임의 가치를 완성하는 선택지다. 독일의 광학 기업 ZEISS는 착용자의 시생활(눈을 사용하는 일상 습관)에 맞춘 개인 맞춤 설계 렌즈를 제공한다. 렌즈 표면의 코팅 품질도 중요하다. 반사를 줄이고 흠집에 강한 코팅은 안경의 인상을 좌우한다. 실버 장식이 빛나는 크롬하츠 프레임이라면, 렌즈도 그만큼 깨끗하고 투명해야 조화를 이룬다. 생각해 보면 두 브랜드는 닮은 점이 있다. 크롬하츠가 좋은 소재가 확보될 때까지 제작하지 않는 것처럼, 정밀 광학의 세계에도 타협 없는 기준이 존재한다. 디테일에 대한 집착이라는 공통분모다. 마지막 팁이다. 크롬하츠처럼 장식이 많은 프레임의 렌즈 교체는 반드시 전문 안경원에 맡겨야 한다. 은 장식 부위를 보호하면서 렌즈를 가공하려면 경험이 필요하다. 좋은 프레임, 좋은 렌즈, 그리고 좋은 안경사. 이 세 가지가 만날 때 하이엔드 아이웨어가 진짜로 완성된다.